1996년이 되고 난 두번 째 컴퓨터를 갖게 됐지만, 부모님과 누나들은 마음껏 컴퓨터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출에 아주 신중하고, 절약을 강조하는 부모님이셨지만 상고를 다닌 누나들의 영향으로 컴퓨터도 있었고, 컴퓨터 학원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셨다.
1996년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됐고, 컴퓨터 학원은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눈치보지 않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과 PC방의 역할에 가까웠다.
당시만해도 초등학생에게 가르쳐주던 컴퓨터 교육이란 코딩이 아닌 타이핑과 DOS 명령어 정도였다. 윈도우 95 사용하는 방법도 조금 있었지만 따라하기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겠다.
다른 교육보다 타이핑이 즐거웠고, 지금도 한글/영문 관계 없이 빠른 타이핑이 가능한 것은 당시의 트레이닝 덕분이 아닌가 싶다.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우선이긴 했지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제약이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 학원이다보니 베이직과 코볼 등의 프로그래밍 언어 책이 있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의 존재와,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어째서 C언어 책이 없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같이 학원을 다닌 친구는 이미 베이직으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상태였고, 그 친구가 C언어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이 것이 나의 프로그래밍 인생의 시작이 됐다.
당시는 저작권 의식이 약하다보니 컴퓨터 학원에서 공공연하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카피해줬다.
카피 수단은 96년만 해도 CD-ROM 라이터나 공 CD가 우리 동네에는 없었다. 플로피 디스켓이었는데, 96년에도 5.25인치나 3.5인치 둘다 많이 사용되었고, 내구성이 그나마 더 강한 3.5인치를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저장 장치들은 불량 비율이 줄어들어서 체감이 잘 안될 수도 있겠지만, SSD 이전에 HDD만해도 베드섹터가 엄청났다.
디스켓도 엄청나게 심했는데, 그래서 수십장 단위로 분할 압축해서 게임을 복사해왔는데 한 두 장이 불량이 났다면 복사 시간과 다시 복사해야 되는데 보통 분할 압축하고 복사 후에 원본은 지우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복사해야만 했다.
불량 있는 디스켓인데 모르고 다시 사용하다가, 오류가 반복되면 현타가 온적도 있었다.
지금은 코딩 학원이라는 형태로 초중고등학생 교육, 부트 캠프라는 형태로 성인 대상의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교육 들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 컴퓨터 학원이 떠올랐다.
나 역시 여러가지 의미로 모르는 것도 많이 알게됐고, 자극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채용 혹한기라 구직이 쉽지 않은 특히 주니어 분들이 더 힘든 시기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개발자 지망생 혹은 코딩 교육 등을 통해서 꿈을 키우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이 정말 이 분야와 이 직업이 적성에 맞고 재밌는지를 미리 체감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작용하게 하시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