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집착

당시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10대 20대때 참 기억력이 좋았다. 수없이 쏟아지던 업무 요청들을 암기로도 기억했다. (물론 이 때도 동시 다발적 요청은 메모를 안해두면 잊긴 했지만, 암기로 기억하면서도 수많은 일을 잘 처리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가며 기억력은 감퇴했고, 어느새 두가지 이상의 일을 할 때마다 놓치는 일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노트 필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노트 필기의 단점은 기록 양이 많아 졌을 때 색인 기능이나 카테고리화 해서 정리하기 어렵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대략 2008년경 나는 에버노트로 디지털 메모를 시작했다.

처음 메모는 메모장 대신이었다. 메모장을 들고 다니기 싫었기 때문이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두번째 시작한 용도는 갈무리였다. 좋은 글을 갈무리 해 두고, 다시 보기 위해서 였다.

북마크로 관리하는 것도 좋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좋은 글임에도 사이트 폐쇄나 글 삭제가 빈번하기에 갈무리를 해 두는 게 안전하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08년 티스토리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10년여간 지속적인 글쓰기를 할 곳이 필요했다.

내가 쓴 모든 글을 블로그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 기록들은 내 노트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그리고 어느새 업무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하루를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남기고 싶어 졌고, 얼마 만큼씩 나아지고 있는지 정확한 근거와 기록 위에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경 위키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위키에 작성된 내용을 보강하는 것이 시작이었지만, 이후엔 위키를 정리하는 것이 뿌듯해 졌고 어느새 나도 기록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기록이 늘어갈 수록 놓치는 것이 줄어들었다. 그걸 몸소 느끼자 기록에 집착하게 됐다.

이전에 내가 하고 싶은 코딩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회의마저 기록의 공간이 됐다. 회의에서 기록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으니, 내 텐션이 회의 내용을 복기하고 싶어 질 때 복기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업무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진행했던 업무의 연장선 혹은 멀지 않은 미래에 해야 할 업무에 대한 검토, 버그 수정 요청 등 크고 작은 인터럽트는 모두 업무의 방해요소이지만, 해소하기 쉽지 않은 인정해야 하는 현실인 경우가 많다.

한번에 한가지 업무만 몰입해서 진행할 수 없다면, 언제 태스크를 전환해도 무리가 없게끔 현황과 목표를 상시 기록하다 보니 유연한 태스크 전환이 가능했다.

업무에 대한 기록에 또 다른 장점은 개선 사항을 짚어 내기 쉽다. 내가 어떤 생각과 어떤 고찰 끝에 내린 결정인지를 회고 할 때 반성해야 될 상황인지, 적절한 판단을 내린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좋은 기록은 언제 다시 돌아봐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기록한 대로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면 잘못 정리된 내용이다. 이를 완벽하게, 적은 공수로 기록하기 위해 지금도 지속적인 개선과 반복 중이다.

내 정리 과정에 대해 설명하자면, 나는 최소 세번의 과정으로 정리를 한다.

  1. 진행 상황을 나열하며, 가능하다면 소요 시간을 디테일하게 기록.
  2. 나열한 기록을 기반으로, 카테고리화 해서 정리.
  3. 카테고리화 해서 정리한 내용을 다른 기존 문서에 병합해야 하는지, 새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검토 하고 정리.

아직 부족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기록 집착자가 됐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얼마나 기록을 더 많이 할 수 있는지, 또 언제든 잘 찾아 볼 수 있게, 반성할 수 있게, 개선 할 수 있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기록 집착이란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상 기록과 정리에 대한 이야기다.

늘어 놓는 기록이 아닌, 정리되는 기록을 위한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위해 오늘도 고민하며, 이 글을 마친다.

Comments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