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임백준의 대살개문

전격 팩폭서.

나는 한국에서 게임 회사에서만 13년째 일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몸 상할 정도로 힘들게 일한 때가 많지는 않다. (있긴 있었다)

그럼에도 나 역시 새벽까지 일한적이 여러가지 이유로 꽤나 많았다. 모든 개발이 그렇다지만, 게임 역시 개발의 특성상 바쁜 시기와 마감 시기가 엄격히 존재하고, 여기에 다국가 진출 시 (모바일로 넘어오며 글로벌 원빌드인 요새는 통용되지 않겠지만) 해당 퍼블리셔 시간대에 맞추느라 새벽 점검이나 모니터링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한국보다 개발 문화가 좋다는 미국이 정말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는 에피소드들이 좋았다. 나는 일해보지 않았지만 한국의 SI에 대한 열악함과 불합리함, 또한 굳이 SI로 한정 짓지 않아도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경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물론 게임회사도 상대적으로 기술보다는 기획/사업/아트가 더 화두가 되긴 하고, 엔지니어링 퀄리티나 개발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산출물이나 일정이 더 중요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엔지니어링은 내실이다. 내실보다 외관을 선호하는 풍토는 오래된 악습 같은 것이다.

이어지는 이과 경시, 소프트웨어 개발 경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특히나 잦은 요구사항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탄탄한 기반과, 유연한 구조 설계, 변화에 제약이 적은 구현, 커버리지 확보와 같은 엔지니어링에서의 이 너무나도 중요함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구현체인 소프트웨어 개발은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장비나 물류에 대한 코스트가 덜 들어가는 것이 이득인데, 그만큼 투자한 게 적어서 일까?

절대적 소요 시간이나, 선행 작업들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면 된다 정신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낮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그 작업자들의 기량 부족과 책임감 결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게임 산업은 흥행 산업이라는 분류를 기반으로 눈에 보이는 작업과 엔지니어링 퀄리티 간의 괴리를 합리화하기 일쑤다.

나는 조금 늦게 깨닳아버린, 이런 괴리감의 실체에 대해서 조금 더 와닿아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임백준씨가 항상 주장하던 프로그래밍의 미학, 디테일의 중요성, 프로그래밍 이상의 것을 어떻게 배우는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준다.

다른 주제들로는 책이 나올 당시 핫했던 (지금도 여전히 핫한 내용도 포함되어있다) NoSQL, Actor 기반 프로그래밍, 함수형 프로그래밍, 머신 러닝 등의 기술 이슈에 대해서 왜 등장했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지금에와서 아주 핫해진 비트코인 채굴에 대한 챕터(해당 챕터는 2014년 5월 컬럼)도 있으니, 3년 반전의 임백준씨의 생각은 무엇이고 어떠한 원리인지 앞서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대살 개문이라는 전제라서, 대한 민국의 개발 문화에 대한 내용만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 절반 이상의 내용이 좋은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내용, 현재 트렌드인 기술에 대한 이야기, 해커 레벨까지 성장하기 위한 가이드, 자기 개발 방법등의 무수히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의 임백준씨 책들도 항상 깊이 있었지만 이 책은 조금 더 와닿은 면이 컸다.

나역시 시니어라는 부담스러운 위치에서 일해야 하는 입장이고, 앞으로도 성장하고 싶고, 쉽지 않겠지만 해커, 구루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은 입장에서 많은 고민과 생각거리를 안겨준 책이었다.

자신이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만으로도 읽어볼만한 책이고, 꽤나 최근 서적에 속하기 때문에 얕게라도 최근 이슈가 된 기술들에 대해서 알고 싶거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데 전문 서적부터 읽기엔 부담스러운 분들이 짬짬이 읽으면 반드시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Comments

comments powered by Disqus